샘플:쿠로츠키

바람 끝에 실려 보낸 연정 w.FleurPluie

“헤이헤이헤이! 신입생들 잘 부탁한다!”
“신입생들이 아니라 5학년들입니다. 보쿠토 씨.”
“앗! 그런가! 하지만 이제 막 비행 수업을 끝냈으니 신입생들이나 마찬가지야!”

저들끼리 시끄러운 선배들을 보면서 츠키시마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방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단 귀찮으니 서로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키타텐이 유일하게 시끄러워지는 건 두 학년 위의 보쿠토 일행이 나타날 때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낙제생. 키타텐의 이단아 보쿠토 코타로와 그에게 꼭 붙어 그를 감시하고 돌보는 보모 아카아시 케이지 그리고…….

“어이어이, 마법사의 인생을 비행 수업 전후로 나누지 말라고.”

보쿠토에게 아카아시라는 목줄을 채워놓은 교활한 남자, 키타텐의 기숙사장 쿠로오 테츠로. 그는 둥글게만 와시로 시끄러운 보쿠토의 정수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쿠로오를 가만히 보던 츠키시마가 책을 덮었다. 저 남자와 만나고 자신은 인생은 엉망이 됐다. 평온하고 평탄하게 그저 무난하게 흘러가던 제 인생을 온통 휘저어 놓은 남자. 츠키시마의 미간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마치 인내심 테스트라도 하듯 몇 번이고 제 혈압을 상승시키던 바보 콤비와의 과외는 약속했던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졌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딱 끊고 일어서려던 츠키시마에게 울면서 매달리는 히나타 때문에 오이와케의 차가운 시선이 날아들었고 대성통곡하는 히나타를 부추기는 하이바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못했더니 그 뒤로는 일어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두 바보의 공부를 계속 돕고 있었다. 마치 경기장을 서른 바퀴쯤 돈 것처럼 힘이 빠진 츠키시마가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물렀다.
멍청하다, 멍청하다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어째 저 두 원숭이는 해가 갈수록 더 멍청해지는지 모르겠다며 그 짧은 사이 뭉쳐 버린 목덜미를 주물렀다.

“오야? 츳키군 귀가 시간이 아슬아슬 한데요?”

피곤한 얼굴로 기숙사에 들어선 츠키시마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마주친 이가 쿠로오였던 탓이었다.

“안 늦었잖아요.”
“그렇지. 아슬아슬하게 말이지.”
“몇 시에 들어오던 무슨 상관이람.”
“오야―? 쿠로오 씨는 안타깝게도 기숙사장의 자리에 있는 터라 기숙사생이 학칙을 위반하지 않게 이끌어야 한답니다.”
“안 어겼으니 됐죠?”
“그리고.”

차갑게 내뱉고 돌아서려던 츠키시마를 붙잡은 건 갑자기 낮아진 쿠로오의 목소리였다.

“케이는 쿠로오 씨에게 특별한 아이니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진지한 목소리에 두근거리던 마음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다시 장난스럽게 바뀌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전하는 한없이 가벼운 말들에 츠키시마의 입술이 비틀렸다.

“특별?”
“케이 군?”
“하, 특별은 무슨. 당신의 그 특별이 내가 아는 특별하다와 좀 다른 모양이지?”
“…츠키시마?”
“특별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 당신이 말하는 그 특별이라는 단어가 역겨우니까.”
“츠키시마.”
“아무한테나 손쉽게 건네는, 친절을 가장한 위선에 특별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지 말라고.”

매사 짜증스럽긴 해도 이렇게 정색하며 화를 낸 적이 없는 츠키시마였던 터라 쿠로오가 난처한 얼굴을 해 보였다.

“정말이야. 츠키시마는 나한테 꽤 특별해.”

거짓은 아니었다. ‘꽤’ 특별했다. 단지 딱 그 정도였지만.

‘일 났네.’

서늘한 츠키시마의 얼굴을 보며 애매한 표정을 한 채 웃고 있던 쿠로오가 금세 표정을 수습했다. 다정한 얼굴을 뒤집어쓴 쿠로오를 그저 차갑게 보던 츠키시마가 고개를 천천히 모로 기울였다. 속이 부글거렸다. 가늘게 붙어 있던 인내심이 툭 끊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요? 특별하다고요. 제가, 당신한테. 제가 생각하는 특별 취급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텐데? 그래도 감히 저한테 너는 특별한 존재다, 라는 말을 할 건가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츠키시마는 쿠로오에게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단지, 그 정도일 뿐이었지만.

“좋아요. 그럼 저를 특별 취급해 주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차갑게 웃고 있던 츠키시마가 싱긋 해사하게 웃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쿠로오가 식은땀을 흘렸다. 츠키시마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화가 난 것 같아 무마시키기 위해 그렇다고 하긴 했는데 자신이 단단히 실수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면, 그 또한 츠키시마의 반응이 어떨지 두려웠다.

“그래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어, 어? 어…. 나, 나도 잘 부탁할게…?”

어색하게 웃는 쿠로오에게 츠키시마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달콤한 기분이 들 정도로 활짝 웃는 츠키시마는 아주 예뻤지만, 쿠로오는 뒷덜미를 타고 흐르는 불안함에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