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앗!”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니시노야의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다.
“유 ― .”
“…으…선배.”
“오늘도 무리였던 거야?”
“…분명 반 정도는 성공이었다구요!”
큰 소리에 헐레벌떡 다가온 선배는 니시노야보다 10배는 더 큰 덩치다.
“이러다 정말로 다치겠어.”
“…그치만.”
니시노야가 마법 봉을 힘껏 잡아 쥐었다. 오늘이라면 성공할 줄 알았던 마법이 중간에 펑 소리를 내며 실패했다. 매일매일 시도하지만 매일 까만 얼굴로 변하는 니시노야, 벌써 내일을 기약했다.
“이것도 아니었나 봐요 아사히 선배….”
“몇 개 남았어.”
“한…, 45개 정도.”
니시노야는 아사히에게 얼굴을 맡기고 목에 걸린 수첩을 살폈다.
“이제 44 갭니다! 아사히 선배.”
걸려있는 펜으로 찍 하고 번호를 지우며 말했다. 잔뜩 적힌 마법 주문들은 모두 니시노야가 설계한 마법이다.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며 하루에도 몇 개씩 실험을 하다 이불을 태워 먹은 적도 있었다.
“다른 방법은…없을까.”
“선배!, 포기하면 여기서 다 끝나는 거라구요.”
아사히의 작은 목소리에도 니시노야는 크게 화답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여기, 여기 이 머리를 꼭 노랗게 만들고 말 거라구요.”
니시노야는 이마 위의 까만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머리카락의 일부분만 색을 변환시키는 마법, 니시노야는 까만 앞머리를 노랗게 만들고 싶었다. 이유는 당연히 ' 늑대인간이 되기 위해서 ' 였다. 누가 듣는다면 코웃음을 치고 비웃을 만큼 말도 안 되지만 유일하게 아사히만큼은 니시노야를 응원해주었다.
“유 ― 하지만 다치는 건 안 돼 ―.”
“…네, 알겠습니다. 선배.”
수건으로 까매진 볼을 닦아주는 두툼한 손, 니시노야는 눈을 감고 얼굴을 내밀었다. 앙다문 입술과 말랑이는 볼살, 꼭 아사히가 키우는 햄스터 같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까지 합세하면 누가봐도….
“…아프진 않아?”
“아뇨…, 늘 이 잿가루만 나오는 걸요.”
젖은 물수건으로 한 번더 머리칼을 닦아주던 아사히는 풀이 죽은 니시노야의 양 볼을 부비부비 수건으로 닦아냈다.
“유우 ―, 사탕 만드는 거 도와줄래?”
깨끗해진 니시노야의 얼굴이 끄덕끄덕하고 움직였다. 덕분에 아사히는 니시노야의 귀여운 반응에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은연중에라도 '귀엽다'라는 말을 들으면 니시노야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눈떠도 돼.”
커다란 눈이 아사히의 말에 반짝이며 깜박였다. 마주한 눈동자에 순간 예쁘다고 말할뻔했다.
“선배!”
“…응? 유우.”
“가리가리 사탕, 주세요….”
아사히는 시무룩해진 니시노야의 눈앞에 하늘색 사탕을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니시노야가 좋아하는 가리가리 사탕, 아사히표 수제 사탕으로 전야제마다 꼬마 마법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유우.”
아사히는 니시노야의 머리 위로 두툼한 손을 올렸다.
“유우는 절대로 성공할 거야 ―.”
니시노야에게서 달그락 사탕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맞아요, 전 절대로 성공할 거에요.”
단맛에 매혹된 니시노야의 눈매가 반짝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투명한 니시노야의 눈동자, 아사히는 그때를 잠시 회상했다. 몸체가 작은 니시노야를 어린 학생으로 착각하고 아사히가 사탕을 내밀었던 게 첫 만남이었다. “혹시 길을 잃었을까? 아냐,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자! 이것 봐 사탕.” 하며 빤히 바라보는 니시노야에게 가리가리 사탕을 주었다.
“선배 ―!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주머니에 있던 가리가리 사탕을 뒤로하고, 아사히는 사탕을 만들던 자리로 니시노야와 함께 돌아왔다. 안 그래도 히가시아카리의 행사 때 쓸 사탕을 만드느라 일손이 부족한 참이다. 한쪽 구석에 마련한 작은 온실 안으로 들어오니 사탕 재료들을 깔아놓은 아사히의 작업공간이 드러났다.
“음, 유우 ― 일단, 재료 좀 정리해줄래?”
“네! 선배.”
한쪽 볼이 불룩하게 올라온 니시노야는 재료가 있는 테이블로 뛰어갔다. 싹싹 소리를 내며 정리하는 작은 손가락,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라마호 사탕은 신기해요.”
“좀 손이 많이 가긴 해도 좋아하니까….”
“맞아요! 아사히 선배가 만든 사탕 진짜 맛있어요.”
“그런가…. 부끄럽네.”
아사히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아, 거기 조심 ―.”
큰 바구니를 들고 있던 니시노야에게로 아사히가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 정돈 한 손으로도 든다구요.”
“알아, 유 ― 그냥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런 거야.”
뒤뚱거리며 과일을 정리하는 니시노야의 모습이 아사히에게는 참으로 예쁘다.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워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싶었다. 작은 햄스터가 먹이를 옮기려 가득 입속에 해바라기 씨를 문 것처럼 입안이 저절로 흐물흐물해졌다.
“아사히 선배 혼자서 하시는 거에요?”
“그냥, 체험관 준비하느라 다들 바쁘기도 하고….”
아사히는 니시노야가 들고 있는 바구니보다 몇 배는 커다란 바구니 두 개를 양손 가득 쥐었다.
“유우가 있잖아 ―.”
“…맞아요! 제가…! 앗!”
바구니에서 또르르 사과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으앗!” 하는 기합 소리를 내며 니시노야는 팔을 빠르게 뻗어 사과를 탁 잡아챘다. 자세는 무너졌지만, 바구니는 안전하게 지켜낸 니시노야, 과연 히가시아카리의 수호신이라 불릴 만 했다.
‘수호신’, 니시노야가 퀴디치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넘어지겠다.”
“으앗….”
몸이 갸우뚱, 다행히도 안착한 곳은 아사히의 너른 품이다. 콕 하고 가슴팍에 코를 부비며 일어난 니시노야, 어정쩡하게 든 과일을 책상 위로 옮겨두고 아사히의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말그대로 오리처럼 졸졸졸, 뒤를 쓱 확인한 아사히는 니시노야 몰래 발걸음을 늦췄다. 실은 나란히 걷는게 좋았다. 이렇게 걸을 때면, 니시노야가 먼저 손을 쭉 내밀기 때문이다.
“히이 ―, 선배.”
쏙 하고 내미는 작은 니시노야의 손을 아시하가 맞잡았다. 손 크기부터가 많이 남다른 두 사람은 마음을 확인한 지 1년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는 니시노야와 손을 잡을 때마다 니시노야의 손이 부서지진 않을까 꼭 집은 힘을 가늠했다.
둘의 첫 만남은 어느 한적한 낮이었다.
“길을 잃어버린 걸까.”
아사히의 첫 대사는 그랬다. 길을 잃은 예비학교 학생일 거라 생각한 탓에 무릎까지 굽혀가며 니시노야에게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혹시 무서워할까 내민 작은 사탕 하나를 니시노야가 받아들었다. 아사히보다는 한 뼘, 아니 두 뼘보다도 아래 있었던 작은 니시노야는 커다란 아사히를 끔뻑끔뻑 쳐다보았다.
“사탕, 먹을래?”
“…사탕.”
사탕이란 말에 눈을 반짝이며 아사히에게서 사탕을 받아들었다. 남들에게 늑대인간이라 불리는 아사히일지라도 ‘사탕’ 이라면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비록 니시노야는 예비학교 학생도 어린아이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탕을 주고나서도 주위를 살피던 아사히는 예비학교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예비학교란 마호토코로에 입학해 기숙사를 배정받기 전까지 다니는 마법 학교로 일종의 유치원 같은 개념이다. 나잇대별로 반이 구성되어있으며 11세까지는 예비학교에 머물다가 연꽃이 피는 연못에서 기숙사를 배정받는다. 연꽃을 기준으로 한쪽은 예비학교, 한쪽은 마호토코로의 본 학교가 되겠다.
“미안, 지금 내가 조금 늦어서, 혼자서 잘 갈 수 있을까?”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향해 아사히는 말했다. 그 뒤로 허겁지겁 뛰어갔으니 마법 약 수업에라도 늦은 것일까. 아사히는 사탕을 쥐여주고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나갔다. 영문모를 남겨진 니시노야, 어쩐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사탕을 받았다.
“….”
사그락, 사탕봉지를 보아하니 이 근방에서 파는 물건은 아니었다. 보기드문 연한 색, 모양도 완전히 동그랗지 않았다. 호기심에 그대로 입속으로 퐁당, 달그락 소리를 내며 입안 가득 들어간 사탕의 달달한 맛. 니시노야는 두 눈을 번쩍떴다.
“…!”
뒤늦게 아사히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따라 가보았다.
정말 그 커다란 남자가 만든 것인가.
“꼭, 찾고 말겠다!”
사탕에 사랑주문이라도 걸려있던 것마냥 니시노야의 눈빛이 번뜩였다. 한번 한다면 정말로 하는 남자였던 니시노야는 집념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정확히 일주일 후, 몇 시간을 진을 치고 기다린 보람 끝에 아사히를 발견한 니시노야는 아사히의 앞을 두 팔로 막아 세웠다.
“엇, 너는….”
“니시노야 유 ―! 입니다!”
“…에…엣?”
두 눈을 반짝이며 아사히의 앞에 나타난 니시노야는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사탕 주세요.”
아사히는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사탕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작은 손바닥에 올려주고 나서, 잠시 니시노야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니시노야는 하오리를 입고 있으며 예비학교 학생을 의미하는 연한 핑크색 또한 아니었다.
“……앗, 설마 기숙사 학생…?”
“네! 니시노야 유― 에요.”
한 손에 사탕을 뿌듯하게 쥔 니시노야는 연신 제 이름을 외쳤다. 사색이 되어버린 아사히의 얼굴과는 다른 쾌청한 표정으로 더욱이 다가왔다.
“저…이름이….”
“아, 나, 나, 나는 아즈마네 아사히…. 편하게 아사히라고 불러…, 요.”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사히는 부끄러운 듯 낮은 존댓말을 썼다.
“…아사히, 선배.”
“…에에에.”
“설마 그 늑대인간이라는 아사히 선배?”
“…뭐어? 아, 아냐 나는, 그게, 그러니까…, 내가 선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키차이 덕분에 니시노야에게 시선을 맞추어 허리를 숙였다. 순간 마주한 반짝거리는 큰 눈동자, 두 사람은 서로 같은 기숙사인 ‘히가시아카리’ 소속으로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퀴디치 멤버로 만날 운명이었다.
“네! 아사히 선배.”
“…서, 선배, 라니…그, 그게.”
아사히의 앞으로 훌쩍 다가온 니시노야는 발꿈치를 들어 아사히를 살피듯 갸웃거렸다.
“늑대인간이라더니.”
“아, 아냐! 나는 늑대인간 같은 게…아닌.”
“니시노야 유 ―! 늑대인간이 되고 말 겁니다!”
“그래 나는 늑대인간이 아닌…. 뭐?”
생뚱맞은 니시노야의 말, 그 말을 시작으로 아사히와 니시노야는 서로를 알았다.
“…늑대 인간이라니.”
“제 꿈이에요!”
달그락 소리가 났다. 니시노야의 입안에 동그랗게 든 사탕, 눈빛이 아까보다도 더 너그러워졌다. 움, 움 하며 맛을 음미하는가 싶더니 금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사히 선배가 만든 건가요?” 하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으…응.”
아사히는 어리둥절했다. 사탕에 관해서 묻기도 하고 늑대인간이 되고 싶다고도 하는 동그란 눈을 한 아이,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가리가리 맛 사탕이야, 아라마호에선 인기가 꽤 있거든.”
“가리가리….”
작은 머리통에 바짝 세운 머리칼, 아사히는 자꾸만 힐끔 니시노야를 바라보았다. 가리가리 맛을 기억하려는지 달싹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가리가리’를 속삭이는 니시노야에게 마치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히 니시노야의 곁을 따라 걸었다.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아사히의 곁에 니시노야가 콕 붙어버린 게 말이다.
그 이후로, 니시노야는 아사히를 따르듯 ‘선배’ 라고 부르며 뒤꽁무니를 뒤쫓았다. 그러다 간혹 “사탕 주세요!” 하고 당차게 손을 내밀면 아사히는 군말 없이 사탕을 주었다.
“유 ―, 괜찮겠어?”
“그럼요! 이것쯤이야.”
지금은 서로가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사탕 만드는 일도 어느새 니시노야와 함께하고 있으니 아사히는 어느 때부터인가 니시노야에게 물들었다.
“이제 재료는 다 모은 건가 ―.”
“음….”
“올해는 딸기가 달았으니까, 딸기를 조금 더 만들까.”
유심히 재료를 바라보는 니시노야의 어깨를 살살 쓰다듬었다. 올해는 가리가리 사탕을 만들 재료가 전보다 적었던 걸 알아챈 모양이다.
“가리가리는.…유우 껄로 따로 만들까? 나중에라도.”
니시노야를 달래듯 귓가에 속삭였다.
“네에….”
역시나 아쉽다. 가리가리 사탕이 딸기 사탕보다 적다니, 니시노야는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가리가리 사탕의 재료는 아라마호에서 구입해 오기 때문에 매년 한계가 있다. 아사히의 작은 텃밭에서 겨우겨우 기르고 있긴 하지만 그 양은 니시노야에게 턱없이 부족하다.
아사히의 말에 몸을 일으킨 니시노야는 아사히의 커다란 손을 맞잡았다.
“괜찮아요, 딸기도 좋아요. 아사히 선배.”
“다들 좋아할 거야 ―, 그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윽고 시작될 ‘사탕 만들기’ 의 준비가 이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