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우시오이

구름 너머에 있는 것은 w.FleurPluie

너와 나의 악연의 시작은 대체 어디서부터인 걸까.

폐쇄적인 일본 마법 사회에 아라마호 출신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국제 사회와 교류를 시작하고 조금씩 아라마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사라진 것뿐이었다.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는 아라마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불이익이 존재했고 작은 마법 사회라 불리는 마호토코로 역시 아라마호에 대한 편견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 편견의 집약체가 바로 니시우미였다.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힘을 숭배하는 니시우미. 니시우미를 만든 서쪽 바다의 마법사 우미카츠 신이치는 그 압도적인 힘은 바로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에서 온다고 믿었고 니시우미의 기숙사생을 뽑는 절대적인 기준을 바로 아라마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혈통으로 정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아라마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 가는 일도 드물게 있긴 했지만 그건 서쪽 바다의 마법사가 추구하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 누구보다 뛰어난 힘을 지닌 천재(天才)만이 아라마호의 피를 가진 채 니시우미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라마호의 피가 섞인 혼혈도 아닌 순수 아라마호 출신인 오이카와 토오루가 니시우미에 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평범한 아라마호였다. 부모님 모두 아라마호였고 그의 조부모도 증조부모도 모두 아라마호였으며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마법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온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한 아라마호였다. 그런 그에게 마호토코로에서 바다제비가 찾아왔으니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으랴. 그는 바다제비가 물어다 준 서신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설레었는데 무려 자신이 그 마법사라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어린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정말 멋지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날들만 펼쳐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7세부인 코타네 시절부터 8세부인 와카메, 9세부인 키미키 그리고 10세부 츠보미 시절을 지나며 오이카와는 마법사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깨부쉈다. 누구보다 명랑했던 오이카와는 예비학교 4년간 악바리 기질을 몸에 익혔다. 염세적으로 변한 그를 지탱해 준 건 예비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같은 아라마호 출신의 마법사인 이와이즈미였고 마호토코로에 넘어오면서 룸메이트가 된 사와무라였다. 그리고 예비학교부터 마호토코로까지 오이카와의 마법사 생을 통틀어 그를 가장 절망케 한 건 바로…….

우시지마 와카토시였다.

우시지마는 예비학교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존재였다. 우수한 혈통, 누구도 무시 못 할 막강한 가문 그리고 주위의 아이들을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다. 일본 마법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열두 가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세력을 보이는 우시지마 가(家). 그리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그런 우시지마 가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천재(天才)였다.

11세가 되어 마법의 정원에 발을 들였을 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마법의 연못을 마주하고서 어린 오이카와는 자신을 제발 히가시아카리로 넣어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교사의 인솔 아래 정자 계단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기도했다. 제발 자신을 히가시아카리로 보내달라고. 꼭, 무슨 일이 있어도 히가시아카리여야 했다.
뭐든 좋았다. 등나무 꽃이어도 좋고, 동(東)이란 글자도 좋았다. 보라색, 고양이, 불꽃 뭐든 좋았다. 처음엔 자신이 절대 갈 수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니시우미에 갔으면, 그래서 그들이 기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곧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단순히 그들이 놀라는 거로 끝나면 안 된다. 그들이 가장 비웃던 곳에 가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다짐했다.
마법의 연못이 어린 오이카와의 기도를 들어준 건지 원래 오이카와가 히가시아카리에 갈 운명이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연못에 선명히 떠오른 문양은 꼬리가 두 개 달린 고양이였다. 오이카와가 간절히 원하던 히가시아카리의 문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