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토가 사라졌다고?”
“쉿.”
“아…쉿.”
아카아시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듯 주변을 살폈다.
“그래서 혹시 여기서 보셨을까 해서요.”
“음…흐음….”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는 아카아시의 눈짓엔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말도 없이 사라진 보쿠토 코타로, 눈치 챈 사람은 아직 아카아시 뿐이었다. 학교에서 몰래 이탈이라도 했다간 퀴디치고 뭐고 당장 퇴학감일 텐데….
“…글세.”
낮고 걸걸한 목소리의 대답, 역시나 답은 모르는 것 같다.
“아쿠 녀석, 어디로 내뺀 것 아닌가.”
“그건.”
‘아쿠’, 보쿠토는 낙제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아쿠를 밥 먹듯 받기로 유명했다.
이번 전야제에도 거르지 않고 받은 낙제, 보쿠토의 명성은 기숙사 앞을 지키고 있는 석상도 알고 있을 정도다. 곱게도 차려입은 복장으로 돌가루를 떨어트리며 고민하는 걸 보아하니 기숙사 앞도 허탕인듯 싶다.
“제가 좀 더 찾아볼게요.”
몸을 휙 돌려 기숙사를 흝어 내려갔다.
“어디 계신 거야 보쿠토씨.”
머리 위로 들리는 웃음소리, 악기 소리, 공중을 지나다니는 유령들이 아카아시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라면 한두 마디 정돈 받아줬을 텐데 지금은 그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어머, 쟤 좀 봐 화장실이 급한가 봐.”
“제인 ―, 그런 건 좀 못 본척해.”
둥둥 떠다니며 왈츠를 추던 유령들의 속삭임이 귀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역시나 대답은 무리, 헐레벌떡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보쿠토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정해져 있는 터라 고민 없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여기도…없으시다니….”
잔디가 깔린 공터, 보쿠토가 자주 낮잠을 자던 곳이다. 공터 가장자리에 놓인 몸보다도 큰 바윗덩이 위를 타고 올라가 봤지만 텅 빈 자리가 공허했다. 어제 먹다 남은 과자부스러기들 덕분에 새들이 날아와 아카아시를 괴롭힐뿐.
“보쿠토씨.”
바위에 등을 기대고 뻣뻣하게 서서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이 도통 어디를 갔는지, 애초에 아카아시의 손아귀를 벗어난 적 자체가 처음이다. 늘 보이던 곳, 딱 그 자리에 있던 보쿠토였는데…. 이 넓은 학교 안을 다 뒤져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쿠토가 사라졌다고 동네방네 알릴 수도 없었다.
“분명히…이번에도 아쿠…를…받으셨는데.”
어제 분명히 확인한 보쿠토의 낙제점, 이번에도 부탁한다며 제 어깨를 두드려준 선배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눈을 떼지 말고 지켜봤어야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같은 보쿠토가 정말로 사라져버렸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생각해보자, 찬찬히…오늘 아침부터….”
아카아시는 눈을 감고 오늘 아침을 떠올렸다. 알람 소리보다도 먼저 일어난 아침, 그 날은 아주 평범했다. 알람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기도 전에 기지개를 피고 일어났다. 바로 옆 침대에 퍼질러 자는 보쿠토를 힐끗 바라 보는 아침 말이다.
“그리고….”
이불을 정리하고 일어나 가장 먼저 보쿠토를 깨웠다. 딱 들어맞는 침대, 본래에는 같은 학급의 친구 자리였지만 보쿠토가 우기고 우겨 겨우 자리를 바꿨다고 들었다.
“그 다음에…어디로 가신다고 했더라….”
가볍게 하오리를 둘러 입고 아카아시와 보쿠토는 아침을 먹었다. 아침 시간이 지나면 식사가 사라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깨우곤 했다. 그리고….
“어이 ― 아카아시 ―.”
“어디로…가신다고 했는데….”
“아카아시 ―!”
“아, 선배.”
아카아시는 선배의 목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가늘게 뜬 눈, 보쿠토와 최근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는 양손 가득 책을 들고 다가왔다.
“너랑 있는 줄 알았는데, 아쿠토 ―.”
“아… 그게.”
‘아쿠토’, 보쿠토와 아쿠를 합친 말로 보쿠토의 친구들은 종종 그렇게 불렀다.
“그 녀석 또 아쿠라면서 도서관에 가더니만.”
“도서관…이요.”
도서관과 보쿠토의 조합이 어쩐지 낯설어서 입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 글쎄, 짐을 두고 한참을 오지 않아서 ― 혹시 너랑 있는 줄 알고.”
“아…제가, 제가 일단 가져갈게요.”
양쪽에 들고 있던 책을 힐끔 보니 모두 보쿠토처럼 커다란 크기를 자랑한다.
“윽.”
“좀 무겁지? 같이 들어줄까?”
아카아시는 바로 보이는 책상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끙끙거리며 책상 위로 가져간 책들. 아무도 보지 않을 법한 곳에서 꺼낸 것인지 먼지가 수두룩하다.
“…에엣 ― 치 ― !”
하오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책 위쪽을 툭툭 털었다. 사르륵 풍기는 먼지 덩어리, 드디어 책 표지의 글자가 드러났다.
[ 고대문자의 역사 ], [ 문자의 시작 룬 ]
“…고대문자.”
죄다 고대문자에 관련된 책들이다. 역시나, 낙제한 과목은 고대문자였던 건가. 그럼 과제를 하다가 그대로 사라졌다는 말인데. 도무지 그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좀처럼 모르겠다.
“잠깐.”
책상 위의 책들. 아카아시는 쌓여있던 책을 한 권씩 바닥에 내려놓았다. 무겁긴 또 엄청 무거워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아카아시가 알고 있는 보쿠토의 습관이다. 마구 책을 빌려 공부하려는 욕심을 채우지만, 막상 보는 책은 단 한 권. 그마저도 다 읽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아마도 보이는 고대문자란 책들을 다 꺼내어 빌렸던 거겠지.
“……고대문자의…신비.”
책 중 가장 먼지가 적은 겉표지다. 기침이 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던 책 사이에서 유독 깨끗해 보였던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이걸 보셨던 건가….”
유일한 단서다. 보쿠토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정보가 이 책에 들어있을지도 몰랐다. 사실, 가능성은 컸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반이라,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보물찾기라도 하러 학교를 몰래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 제발, 무모한 일은 아니어야 할 텐데….
“어디 보자…, 아마도 앞쪽일 텐데.”
책 한 장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고대문자들, 거의 원서에 가까웠다.
“이걸…어떻게 보신 거지.”
고대문자에 낙제할 정도의 실력이면서 원서를 해독해 읽었다니. 아카아시는 다시 미궁에 빠져 의자에 주저앉았다. 찾으면 찾을수록 보쿠토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만 튀어 올랐다. 책이라던가, 고대문자라던가.
“……아냐 그래도 해보자.”
그래도 한 가지, 아카아시가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보쿠토, 엉성하고
바보 같아 보여도 고도의 마법기술을 쉽게 해버릴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편이었다. 아니, 머리만큼은 가히 금색 하오리를 두를 판이다.
“……룬의 대한….”
아카아시는 한 글자, 한 글자씩, 손가락을 글자 위로 올려 확인하듯 읽어 갔다.
“아 이럴 거면 왜 낙제를 하신 거람. 이 정도를 읽으실 수 있으시면서.”
잠시 머리를 싸매는 아카아시는 울상이다. 발로 바닥을 툭툭 치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 앞에 엎드렸다.
“으으….”
푸 후 우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감상에 빠졌다. 책의 내용은 고대문자를 만든 ‘룬’, 그리고 이 시대에 살았던 마법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딱 봐도 보쿠토가 좋아할 법한 내용이긴 했다. 하지만 보쿠토가 책을 완벽히 읽었을 리 없었다.
“내가 보쿠토씨라면…여기쯤에서 자버렸을 텐데.”
손으로 가늠한 페이지를 차례로 휘리릭 넘겼다. 어딘가에 보쿠토의 흔적이….
“…엇, 이건…뭐지.”
꼭짓점 끝이 살짝 접힌 페이지, 그 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한 장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치만…아무것도 안 써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도 빈 페이지다. 빽빽하게 쓰인 페이지 중에 유일하게 비어있는 한 장, 여기에 무언가 비밀이 있으리라.
“……뭘까….”
보쿠토가 알아낸 건 뭐였을까. 아카아시는 곰곰이 따졌다. 낡아 버린 갈색 종이 위에 손가락을 툭, 툭, 아카아시가 고민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보쿠토니까, 보쿠토선배니까, 보쿠토씨니까 여러 갈래로 가닥을, 잡았다. 끝을 접어둔 걸 봐선 무언가를 봤다는 건데.
“아―정말….”
아무리 봐도 텅 빈 종이만 나올 뿐이다.
어느덧 시간은 노을 질 무렵, 어두워지는 까닭에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막 시작되려는 축제덕분에 텅빈 도서관의 불빛마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책상 가운데에 있던 하나 남은 호롱불, 손을 뻗다 문득 아카아시는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루모스 ―.”
그 순간 아카아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루, 루모스.”
지팡이 끝에 환하게 켜지는 순간적인 불빛, 그 하얀 불빛이 텅 빈 종이에 닿은 순간이었다.
“빛, 빛이야.”, 자연광이 아닌 마법으로 만들어낸 빛에 반응하는 페이지였다. 빛을 비출 때마다 종이 안에는 빛으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반짝였다. 루모스, 마법 봉 끝에 나오는 빛이 여러 번 반짝거렸다.
그러다 벌떡, 의자가 뒤로 쿵 넘어갔다.
“말도 안 돼.”
빈 도서관 안을 밝히던 불빛이 뚝 하고 끊겼다. 마법의 호롱불이 은은하게 비출 뿐, 아카아시는 수수께끼의 종이를 베껴 쓴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있다.
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아카아시는 다급한 발소리로 도서관 안을 뛰어갔다.
휘이익
“업 ―.”
착하고 손에 감기는 빗자루, 아카아시는 가볍게 올라타 땅에 발을 구르더니 잽싸게 하늘 위로 떠올랐다. 누가 볼세라 휘잉 하고 사라지는 키타텐의 몰이꾼, 아카아시는 날쌔게 학교 밖을 빠져나갔다. 이제는 노을이 진 이른 밤, 동그란 달이 떠오르는 전야제의 하늘에 작은 점처럼 아카아시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비로소, 키타텐의 두 학생의 유례없는 일탈이 벌어졌다.